斷想-雜記-時論

융합 교육, 수요에 비해 공급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

김덕현 2009. 11. 27. 23:00

2009년 11월 23일자 교수신문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김유정 기자)

제목: ‘섞고 합치고’ 실험 한창 … 양적 팽창보다 연구경험부터 (달아 오르는 대학가의 융합 열풍)

      * 기사 원문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9323

 

저도 김기자의 전화 인터뷰에 응했었는데 '열풍'이 그저 일시적으로 뜨거운 바람으로 지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000년 대 초반, 닷컴 열풍, 그 이후 불었던 인터넷 쇼핑몰이나 기업간 마켓플레이스 등이 열풍이었다면 열풍이었겠죠. 또, 지금 불고 있는(?) '융합 열풍'도 열풍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학문이든 비즈니스든 생장성쇠 (生長盛衰)가 있기 마련이라고 본다면, 여름처럼 뜨거웠다가 겨울처럼 식는 순간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갓난아이가 뛰려고 한다든지 여전히 뜨거워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열기가 식어버리는 게 문제겠죠. 1990년 대 중반 이후, 제 자신이 그 속에 있었던 CALS나 e-비즈니스 (또는 전자거래)도 그런 과거를 겪었다고 봅니다. 즉, CALS 경우 미국에서는 1985년부터 1990년 대 말까지, 한국에서는 1990년 대 중반부터 1990년 대 말까지 정부/기업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구요, e-비즈니스 (또는 전자상거래) 경우 미국에서는 1990년 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한국에서는 2000년 대 초부터 중반까지 5~6년 정도 정부/기업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융합을 하나의 수단으로 본다면 이는 꽤 오랜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세분화 된, 전문화 된 학문과 기술이 오늘의 발전된 물질문명을 일궈 낸 것은 틀림 없지만, 그 결과 인류는 정신적으로 황폐해 졌고 인류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한 파괴가 심해진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보다 향상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라는 거창한(?) 목적은 오랜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있구요, 산업경제 측면에서 보면 점점 더 심해지는 기업간, 국가간의 경쟁 상황과 끊임 없는 비즈니스나 기술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이 만들어 내야 할 새로운 제품/서비스 중 상당 부분은 기존의 것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융합함으로써 창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융합이라는 수단에 대한 사회 내지 기업의 수요가 지속될 것임에 반해 이를 공급할 대학의 역량은 아직 충분한 준비가 덜 된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대학에서는 일시적 열풍이 아닌 보다 긴 안목에서 융합이라는 수단을 연구하고 이를 신세대는 물론, 이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마악 시작한 융합경영학 내지 융합경영학과는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할 목표입니다. 아직은 융합학 내지 융합경영학을 전공한 교수도 없고 융합경영에 대한 체계적인 교과과정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융합 교육은 한 가지를 전공한 한 두 명의 교수가 한정된 강의실에서 할 일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실무자들이 열린 공간을 통해 함께 가르치고 또 배워야 할 일종의 사회 학습 프로젝트입니다. 융합에 대한 교과과정에서는 종래의 문과/이과 구분 같은 것은 없어져야겠지만 육성할 대상-예를 들면 융합기술자나 융합(기술)경영자-에 따라 학습 경로나 초점을 달리 해야 할 것입니다.

 

융합 교육에 대한 교육 시장의 수요가 큰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요타가 제창한 T자형 인재, 삼성이 제시한 ㅠ(파이)형 인재, 안철수 박사가 이야기 하신 A자형 인재 등이 모두 오랜 동안 기업이 필요로 해 온 인재상이었습니다. 다만, 이를 공급할 대학의 역량 즉, 교수진, 교과과정, 산업체와의 실질적인 협업 등이 부족했던 것 뿐입니다. 그러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학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수요자인 기업이, 또 촉진자인 정부가 해야 할 일들도 있습니다. 대학가의 융합 교육 열풍이 열풍으로 끝나지 않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이 진정으로 필요한 인재들이 대학에서 바로 공급될 수 있도록 대학 자신의 노력은 물론, 기업이나 정부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각 이해당사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분담해야 할지는 함께 논의, 정립해 나아가야겠죠. 

 

(주) T자형 인재: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가운데 ('ㅡ')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 ('ㅣ')인 인재, 소위 Genral-Specialist

      파이형 인재: 폭넓은 지식과 경험은 물론, 두 가지 (이상) 분야 (예를 들면, 공학과 경영)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

      A자형 인재: 두 개의 수직선은 전문지식과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의미하며 수평선은 소통 능력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