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雜記-時論

융합기술, 개발은 물론 활용도 준비해야

김덕현 2010. 1. 16. 10:38

   최근 사회, 경제 전반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가 융합(convergence, 컨버전스)이다. 융합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개체들을 섞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행위 또는 과정을 가리킨다. 융합에 대한 국가 정책이나 기업 전략에서,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와 교육 활동에서 섞는 행위 즉, ‘어떻게(how)’의 실행에 앞서 융합의 목적과 대상 즉, ‘왜’(why) 그리고 ‘무엇을’(what)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융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국가 또는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되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에서 융합의 목표는 국민생활의 편리함, 행복, 건강, 안전 등을 향상하고 기존 산업을 육성하거나 신산업을 창출하는 데, 기업 전략에서 융합의 목표는 시장/고객이 요구하는 제품/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각각 두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융합의 대상은, 국가든 기업이든, 그 자산인 지식, 학문, 기술, 물적 자원, 인적 자원, 문화 등이 된다. 국가 또는 기업의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융합 연구와 교육의 목표 내지 대상은 새로운 이론 및 기법의 발견, 발전, 정립과 훌륭한 인재의 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목표와 대상을 설정하고 나면 융합이라는 하나의 공정 속에서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흐름에 초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소비자로부터 생산자에 이르는 흐름에 초점을 둘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미국은 융합기술을 개발해서 시장에 공급하는 ‘technology push’ 전략을, EU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제품/서비스가 생산되도록 유도하는 ‘customer (or market) pull’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전략의 유효성은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 상태와 현 상태, 그리고 추진체제 등에 따라 차이가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융합 정책은 원천 융합기술의 조기 확보, 창조적 융합기술 전문인력 양성, 융합 신산업 발굴, 융합기술 기반산업 고도화, 개방형 공동연구 강화, 범 부처 연계∙협력체계 구축 등 6가지 기본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융합(공정)의 투입요소(input) 내지 변환도구(mechanism)인 융합기술과 융합기술 인력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산출물(output)인 융합 신산업 (예: 의료, 에너지/환경, 교통)을 창출하려는 것이기에 EU보다는 미국의 전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전통산업을 대상으로 한 (‘IT 융합’) 전략도 시장/고객의 니즈에 수렴하기 보다는 확보된 기술을 기존 제품/서비스에 적용하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는 점에서 ‘수요지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의 융합 정책/전략에는 적어도 다음 2가지 점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고 본다. 우선, 융합기술의 개발 노력에 비해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와 방향 설정, 관련 역량 육성 등의 노력이 부족하다. 즉, 2000년 대 초부터 적어도 4~5년 동안 인터넷을 포함한 IT를 기업활동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e-커머스 내지 e-비즈니스였던 것처럼 융합기술을 기업활동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 (필자는 이를 ‘융합경영’으로 부를 것을 제안함)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집중적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업의 생산성 및 경쟁력 향상에 활용하고 있는 수준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중하위라는 자조적인 평가를 융합시대에 들어서서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기술개발과 기술활용의 공진화(coevolution)가 고려되어야 하며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외에 기술활용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투자는 (1) 국가의 중장기 비전 달성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과제 (예: 국민의 건강/안전, 산업 진흥, 정부 혁신 등)를 고객의 니즈라는 측면에서 먼저 식별하고, (2) 그러한 과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필요한 융합기술들을 식별하며, (3) 식별된 기술의 획득 방법 (즉, 국내개발, 해외도입, 국내/외 공동개발; 민간주도 또는 정부주도 등)과 획득 시기를 결정하고, (4) 융합기술의 확보 방식을 폐쇄적 연구개발 (R&D)이 아닌 개방형 협업개발 (C&D: Connect & Develop)로 전환하기 위한 글로벌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5) 융합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6) 융합 제품/서비스의 마케팅/생산/판매 등을 위한 조직과 인력, 업무방식을 혁신하며, (7) 융합기술을 이용한 제품의 기획/계획, 기술관리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일 등에 배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융합 신산업의 창출 노력에 비해 전통산업 군에 속하는 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융합 시대에 적합한 체제로 전환하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고심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육성 문제를 융합시대를 맞아 보다 공격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조선, 전자(반도체/휴대폰), 자동차 등 산업의 일부 대기업이 이끌어 가고 있는 산업구조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이 허리를 받치는 강건한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중소기업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선도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중소 협력업체의 육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2007년 기준, 전체 사업체 수의 99.9%, 전체 고용의 88.4%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차세대 성장산업의 근간이 될 나노, 바이노, 정보통신, 의료, 로봇, 에너지/환경 등 관련 핵심기술을 확보해 가고 있으나 나머지 대부분은 융합 내지 융합기술, 그리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개별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융합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할 역량을 갖출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적어도 4~5년 동안은 정부 주도로 (1) 중소기업의 융합 제품/서비스 개발 지원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 중), (2) 중소기업의 글로벌 마케팅/조달/생산/판매, 기술관리 등 역량 강화를 위한 CEO 및 임직원의 (재)교육 지원, (3) 융합 제품/서비스 관련 정보 제공 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과 제시, (4) 중소기업 간 협업 네트워크 (예: 이업종교류회) 구성 지원 확대, (5) 우수/성공 사례의 발굴, 포상, 인센티브 제공 등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은 향후 20~30년간의 기술발전 속도는 지난 200~300년 동안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빠를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기술개발조차 이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인 바, 상대적으로 단기적 투자에 의해 산업 내지 국가경쟁력이 좌우될 융합기술의 활용 문제는 top-down 방식의, 보다 공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