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매경이코노미 1594호 (2011. 2. 23) 오픈칼럼에 기고한 글의 앞 부분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http://www.mkeconomy.com/에서 확인하세요.
이 글에서 저는 상식처럼 되어 버린 통섭, 융합, 컨버전스란 용어들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가운데 합목적적인 방향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편집부에서 제목을 바꿔 주었는데 '제대로 알자'보다는 '제대로 쓰자'는 주장입니다.
아울러, 기고한 글에는 빠뜨린 그림 (통섭-융합-컨버전스의 관계)을 아래에 덧붙여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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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단어로 통섭, 융합, 컨버전스가 있다.
통섭(consilience)은 사전적으로는 추론 결과의 부합, 일치 또는 두 학문 방법의 합일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2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지식을 통합하려는 것(統攝:최재천 교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을 중심으로 ‘함께하는 도약’을 도모하려는 것(通攝:심광현 교수)이다. 필자는 통섭을 학문과 지식을 ‘함께, 또 따로’ 연구, 발전시키려는 개인 및 집단의 노력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르네상스 이후 세분화된 학문과 양적으로도 엄청나게 많아진 지식을 한 사람이 모두 마스터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 통섭은 나와는 다른 생각, 지식, 경험 속에 담긴 다양성과 이질성을 수용하는 태도와 소통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융합(融合)은 녹아서 한가지가 된다는 뜻으로서 이 경우, 영어로는 퓨전(fusion)으로 표기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융합은 굳이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서로 대립될 수 있는 것들조차 하나가 되자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융합(fusion)을 학문, 지식, 기술, 산업 등을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쓰게 되면 단순히 ‘섞자’ 또는 ‘대립하지 말자’는 원론적인 논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용어가 된다는 데 함정이 있다. 융합을 지나치게 넓게 정의, 적용하는 것은 이를 정책이나 전략으로 추진할 때 실행상의 비효율과 시행착오를 초래할 소지가 크다.
(중략)
요약하면, 통섭은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온 여러 학문 간의 경계를 낮추는 노력으로, 융합은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집중해야 할 획기적 기술이나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으로, 컨버전스는 융합이 지향해야 할 가치의 指向點으로 이해, 접근하자는 것이다. 3가지 용어에 대한 이와 같은 구별이 선행될 경우, 기존 정책/전략은 다음과 같은 점을 재검토 해 봐야 할 것이다. 국가와 기업이 추구해야 할 융합목표는 기술, 제품/서비스, 산업 등 측면에서 선진국이나 1등 기업의 발뒤꿈치를 서둘러 쫓아가는 것 (‘fast follower’)이 아니라 세계 최고 (‘first mover’)를 창출해 내는 데 두어야 한다. 스마트폰은 전화, mp3, 카메라 등의 기능을 합쳤다는 점에서 본다면 융합이 아닌 복합상품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개인생활의 質과 格은 융합상품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융합전략 측면에서는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목표의 균형있는 조합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장기목표는 5~10년 후를 대비한 신기술의 개발과 기술 인력의 양성에, 단기목표는 기존 기술을 활용해서라도 5년 이내에 1등이 될 수 있는 신상품 개발과 이를 주도할 산업체 경영자와 중견관리자의 재교육에 높은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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