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3년 5월, 물류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들의 생활방식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다. 1969년, 미국 국방부가 ARPANET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인터넷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과 웹(web) 기술은 수 천년 동안 실세계에서 이루어져 왔던 각종 거래처리를 사이버 세계의 그것으로 옮겨 가게 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자체의 보안성, 안정성도 미흡하고 전자문서의 생산 및 유통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웹 기술도 거래 방식 속에 내포된 여러 가지 의미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소위 '닷컴 열풍'은 발빠르게 실리를 챙기려는 사람들의 사기극(hype)이었을 수도 있고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충정이었을 수도 있다. 닷컴의 주축이었던 전자상거래1) 관련 기업들은, 또 이들의 시행착오를 방조(?)했던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점을 간과했고 또 여전히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경영자든 기술자든 전자상거래란 것이 단 기간(예를 들면, 2~3년) 내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전자상거래는 전통적으로 구축되어 온 정보시스템의 새로운 명칭일 뿐이다. 정보시스템(Information System)이란 경영관리, 제품개발, 대외 협력 등 모든 조직활동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한 man-machine 시스템이다. 컴퓨터가 사람들의 역할을 부분적으로나마 대신해 줄 수 있는 기계로 인식된 이후 개발, 활용되어 온 경영정보시스템(MIS), 생산정보시스템(CAD/CAM/CIM), 항공사의 예약시스템, 우주선의 발사통제 시스템 등이 그 예이다. 정보시스템은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정보통신망, 데이터(베이스), 프로세스, 그리고 사람으로 구성된 복합 시스템이라고 배웠다. 즉, 정보시스템은 정확하고 합리적인 ‘기술’과 여러 가지 점에서 컴퓨터와는 비교가 안 되는 능력을 가졌지만 가끔은 부정확하고 또 불합리한 ‘인간’이 상호 작용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전자상거래는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이를 활용하는 인간과 조직 문화 내지는 업무 방식이 성숙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점이 명확히 인식되어야 한다. 전자상거래의 최종 모습은 거래당사자들 간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이 공유된 가운데 연계되어야 할 업무 프로세스들이 일관화(streamlined) 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에 필요한 기술의 진보는 급격히 이루어 질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관습의 변화는 좀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둘째는 전자상거래를 온라인 쇼핑몰이나 기업간 전자거래소(e-Marketplace)를 기존 거래 시스템에 추가하는 일 정도로 본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전자상거래는 기존의 업무 방식(‘Business’)을 새로운 업무 방식(‘e-Business’)로 재구축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전자상거래의 구축 과정에는 기존의 업무 방식을 구성하고 있는 낡은 기술 및 제도와 새로운 기술 및 제도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작업이 포함되어야 한다. 첨단의 정보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전자상거래를 포함한 대규모 정보시스템 프로젝트의 50~70%가 신구 기술간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미비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ICH, 2000년 자료). 전자상거래의 구현을 위해서는 (1) 조직의 전략과 구성원, 제도 등 경영관리 요소와 데이터, 프로세스, 기술 등 시스템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킨 변화관리 모델을 정의한 후 (2) 기존(AS-IS)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을 하나 하나 새로운(TO-BE) 시스템의 구성요소들로 전환해 가야 한다. 쇼핑몰이든 전자거래소든 이들 각각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작업보다 이들이 ‘개밥의 도토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계획 수립과 시스템 설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미국의 경우는 닷컴 기업들의 매출액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시장조사 기관인 eMarketer는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매출액이 2001년에는 $509억이었으나 2005년에는 $1,556억으로 3배 정도 성장할 것이며, B2B(기업-기업간 거래) 매출액은 2001년에 $4,743억이었으나 2004년에는 $2.4조로 5배 정도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한 바 있다. 닷컴 기업들의 성쇠에 관계없이 전자상거래의 가능성과 전망은 결코 비관적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는 단지 변화에 소요되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며 이며 동일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가짐으로써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주 1)
필자는 전자상거래를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제품/서비스의 구매, 판매와 제품/서비스의 설계, 제작에 참여하는 파트너간에 정보 공유를 통해 수행되는 협업(collaboration)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또한, e-Commerce는 구매, 판매에 초점을 둔 초기의 전자상거래를, e-Business는 협업도 포함하는 현재의 전자상거래를 가리키는 용어인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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