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경영 일반

큰 그림이 없는 정보화 추진의 문제

김덕현 2005. 6. 21. 16:08

- 아래는 2003년 7월, 물류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

 

‘큰 그림’의 의미

   정보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큰 그림’(big picture)이란 정보화에 대한 중장기 기획문서를 가리킨다. 정보화 사업의 초기 단계에 실시하는 ISP(Information System Planning)나 최근, 미국 연방정부, 표준 단체, 컨설팅 업체 등이 제시한 정보기술 아키텍처 (ITA: Information Technology Architecture) 내지는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 (EA: Enterprise Architecture)가 바로 그것이다.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의 ‘엔터프라이즈’는 특정 부문이 아닌 회사 전체, 특정 부처가 아닌 정부 전체, 또 특정 기업의 내부만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들을 포함하는 확장기업 내지는 가상기업 전체를 의미한다. ‘아키텍처’는 대상 시스템의 구성요소와 이들간의 연관관계를 정의해 놓은 것으로서 건축물의 조감도 내지는 설계도에 해당된다. 좀 더 기술적인 표현으로 EA는 (1) 정보시스템 외부의 업무적, 기술적 환경요인을 고려한 가운데 (2) 정보시스템 내부에서 처리될 기능(function), 업무 프로세스, 정보/데이터, 기술(technology) 등의 요소들을 (3) 관련된 사람들이 이해하고 컴퓨터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도록 표현/정의한 문서이다. EA의 중요한 의미는 여기에는 정보시스템의 ‘기준상태’(AS-IS)와 ‘목표상태’(TO-BE), 그리고 그 차이를 메워 갈 구체적인 이전 계획(transition plan)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미국 전자정부의 EA에는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 외에 투자대효과를 따지기 위한 성과 측정기준 (PRM: Performance Reference Model)이 포함되어 있다.

   전자상거래나 전자정부처럼 규모가 크고 그 구성요소 자체와 구성요소간의 상호관계가 매우 복잡하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존재하는 정보시스템의 경우, EA는 효과적인 프로젝트 관리 및 기술 관리 수단이 된다. 예를 들면, 전사적자원관리(ERP)를 운용 중인 기업이 이를 공급망 관리(SCM)로 확장하고자 할 때, EA는 새로이 구입할 것과 기존 시스템 중 재사용 할 것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신구 시스템간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사전에 짚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 정부의 기획예산처(OMB)는 연방정부 내에서 추진되는 모든 정보화 사업은 반드시 EA를 정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정보화 추진 상의 시행착오 사례

   국내의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의 정보화 사업에는 오래 전부터 ISP가 적용된 바 있다. 또한, 최근 한국전산원을 중심으로 ITA의 적용 방안이 검토, 제시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한 민간단체도 활동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정보화 관련 시행착오들을 보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 내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각종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다뤘던 교육행정정보화(NEIS) 사업의 문제나 간혹 제기되는 전자정부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공공연하게 거론되지는 않지만 일부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이 상당한 투자를 해서 구축한 정보시스템이 곧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 등은 다음과 같은 잘못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첫째, 제대론 된 ‘큰 그림’ 자체가 없는 가운데 그저 의욕만으로 사업을 벌인 경우. 이는 망망대해를 항해해야 할 선장이 도착지와 출발지의 좌표는 물론 중간에 정박할 항구나 만나게 될 암초에 대한 사전 준비와 고려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아주 운이 좋으면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둘째, ‘큰 그림’은 있으나 그 속에 들어가는 구성요소와 이들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정의가 불충분한 경우. 예를 들면, NEIS, CS, SA 등 기술구조가 다른 시스템들은 교육행정정보화라는 큰 틀 속에서 일정 기간 동안 상호운용성을 갖고 공존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들로 설계되었어야 한다.

   셋째, 나름대로의 ‘큰 그림’은 있으되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공감과 공조가 없는 경우. 예를 들면, 전자정부 시스템은 국민 입장에서 보면 부처별로 각각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민원처리, 행정정보 조회 등 일관화 된 서비스가 되도록 정부 내부 시스템에 대한 통합이 선결 내지는 병행되었어야 한다. 전자상거래의 촉진을 위한 시범 사업, 기술 개발, 표준 개발 등에서도 관련 정부부처와 다양한 민간 단체, 연구소, 학계간의 적극적인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모두가 함께 해 가야 할 일들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나 직장에서 ‘큰 그림’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온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지혜와 마음을 모아서 차근하게 해 가야 할 일들조차 ‘빨리빨리’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화에 대한 시행착오가 누적된다면 거북이에게 뒤진 동화 속의 토끼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될 수도 있다. EA에 대한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일, 경영관리 및 실무 전문가와 IT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국가 차원의, 기업 차원의 EA를 만드는 일, 중요한 정보화 사업의 기획-계획-집행-평가 결과를 관련 인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등은 오히려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